Life/철따라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후기

웨비연 2023. 10. 26. 00:04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후기 요약 


1. 쿠키 영상 없음. 
2. 지브리 작품을 봐온 사람들에게 추천. 입문 영화는 절대 아님! 
3.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예술 영화가 될 수도, 난해한 영화가 될 수도 있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전개.
4. 조류 공포증 주의. 새가 정말 많이 나오고 개인적으론 조금 무서웠음 ㅜㅜ

 

 

⁋ 아래부터는 사담 및 스포일러 존재

날이 많이 차가워졌다. 후드티 한 장 입고 나왔다가 생각보다 추워서 아직도 잔기침을 살짝 하는 중. 요즘에는 영화 개봉 전에 IMAX 특전이나 당일 관람 시 혜택에 대한 홍보가 워낙 많다보니, 범죄도시3 부터는 IMAX로 관람하고 특전 포스터를 받아오는 재미를 즐기고 있다. 주로 IMAX 행사는 CGV에서 하는데, 쿠폰이나 다른 이유(주로 오리지널 티켓을 받기 위함.)로 다른 영화관을 이용하게 되면 포스터를 별도로 구매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러다보니 보통 영화를 개봉하는 수요일에는 영화를 보러 가는데, 이번엔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를 선택했다. 은퇴작인지 복귀작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센과 치히로를 보고 자란 세대에게는 어떤 하야오 영화도 환영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센과 치히로 세대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나는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의 애청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워낙 메이저한 감독인데다 하나의 장르를 만든 거장이라고 생각하기에 신작이 나오면 어떤게 있나 보거나, 상영이 끝나면 자매와 함께 집에서 관람하는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이 작품을 보고 조금은 취향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pedia.watcha.com/ko-KR/contents/m5Q9ywD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 왓챠피디아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간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던 ‘마히토’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pedia.watcha.com

일본 원제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이고 미국 제목은 'The Boy and the Heron', 즉 '소년과 왜가리' 라고 한다. 미국판의 것이 좀더 직설적인 표현인 만큼 나에게는 좀더 와닿는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가장 크게 느껴진 주제는 '소년'과 '노인' 이었다. 특히, 메인 이미지를 차지하고 있는 '왜가리'는 실제로 왜가리의 탈을 쓴, 혹은 인간의 몸을 가진, 아무튼 설명하긴 어렵지만 '노인'이다. 꾸준히 언급되고 방향성으로 제시되고 있던 큰할아버지이자 탑의 주인 역시 '노인'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과 '소녀'가 있다. 물론, '소녀'는 '소년'의 어머니가 될 인물이지만.. (여기까지 쓰고보니 정말 영화가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긴 하다.) 

소년, 마히토는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어른의 규칙과 세상을 곧이곧대로 따르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전쟁 중에 어머니를 잃었고, 그 어머니의 동생 그러니까 이모와 다시 사랑하는 아버지의 삶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한 지붕 아래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곤 대화도 잘 안되는 노인들 밖에 없다. 그나마 자기 또래를 만날 수 있는 학교에 가서도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에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악의(영화 내에서의 표현을 차용했다.)를 쓰게 된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등장하는 할머니들 장면

여전히 악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모를 찾으러 이세계로 떠나게 된다. 여기서 내가 본 그림은 '노인'과 함께다. '노인'과 함께 간 이세계는 다른 '노인'이 불러낸 공간이며, 자신의 혈육인 '노인'이 제시한 방향성이자 규칙이자 말 그대로 세계였다. 현실과는 다르지만, 어쩌면 현실과 너무나도 닮은 이 세계에서 '소년'은 그토록 보고싶던 어머니의 '소녀' 시절을 만나기도 하고, 함께 하던 '노인'의 젊은 시절을 마주하기도 한다. 펠리칸 '노인'의 사연을 듣기도 하고, 심지어는 왜가리 '노인'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시공간이 뒤섞이는 그 모든 과정에서 '소년'은 소년만의 가치관을 찾고, 자신의 악의를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의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그런 공포를 가지고 있음에도 '소년'은 '노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나의 선택으로 온 세상이 뒤바뀔 수도 있으며 존재하는 생명체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압박적인 상황에서도 '소년'은 그의 신념을 지키고 그만의 가치관을 실현하는데, 모든 생명체는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그 결과가 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존에 박혀있던 보수적인 관념과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런 해석을 했다. 동시에, 그럴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에 '노인'과 '소년'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현실 세계로 돌아간 마히토는 엄마(이모)와도 잘 지내고, 현실 세계의 여러 악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노인의 세계이건, 소년의 세계이건, 우리가 우리의 악의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세상이 가진 관념적 악의를 받아들여야 그를 무너뜨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노인'은 이렇게 살아왔고, 그는 무너질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다면 그대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최근의 내가 재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독 보수적인 생각들과 마주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래서 이 영화를 이렇게 해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어떻든 간에, 새로운 시작을 맞이해야 하는 나의 상황과 조건 속에서 이 영화를 본 것은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시기에 좋은 영화를 봤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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